나는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내 지능과 관련이 있다. 이상하게도 무슨 개념, 사람, 물건 무엇이든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짧은 분량 안에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새로운 짧은 소설을 읽는 것은 내 능력 상 굉장히 피곤한 일에 속한다. 내 뇌는 그런 일에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단편 소설집인듯 아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전부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처음 에피소드와 마지막은 연결이 되어 있고, 다른 에피소드들도 관통하는 '운명'이라는 주제가 있다. 그런 면에서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책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운명은 우리가 스스로 정할 수 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 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에는 "과연 나는 내가 정말 내 의지로 사는 것일까"하는 고민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배가 몹시 고프다. 그래도 연초에 계획한 다이어트가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 밤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똑같은 상황의 또다른 내가 있다면 이 상황이 백번, 천번, 만번이고 반복되었을때, 나는 여전히 먹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그 중에 몇 명의 나는 음식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먹을 것인가라는 식이다. 만약 상황이 완전히 똑같더라도 나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믿는다면 아마 이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아주 무수한 반복 속에서도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판단을 내린다고 말했다면 과연 여러분 스스로가 '자유의지'로 사는지 고민이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이 생각을 조금 확장해 본다면 (그리고 또 소설 속의 주제인 '운명'으로 돌아가자면) 우리의 운명이 실제로 정해져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미친다. 잘 생각해보자. 만약 여러분도 나도 모두 자유의지 속에 살지 못하고 주어진 환경에 당시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한 가지의 결정만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쨌든 정해진 것이 아닌가? 물론 지금 내가 말하는 정해진 미래는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를 보았을 때, 누구든 정해진 결정을 차례차례 내릴 것이고 나 또한 그럴 것이기에 순방향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운명'이라는 것은 미래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는 속성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기에 같다고 볼 수도 있다. 고민에 고민을 하던 나는 어느정도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물론 답은 없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 말로 우리 인생 그 자체라고 나는 믿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이어 다카노 가즈아키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이다. 이번에 그의 다른 소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와 함께 연달아 읽었는데 이 책도 짜릿하고 재미있다. 이 두 소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전에 읽었던 <13계단>, 혹은 <그레이브디거>등의 다른 작품과도 줄거리의 풍이 꽤나 달라서 나처럼 무딘 사람은 같은 작가가 쓴지 모를 것이다. 같은 감독의 영화를 보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있듯 한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읽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에 매력에 흠뻑 젖어보는 시간이 가져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