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위탁 교육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매년 공고를 먼저하고 지원자를 받은 후 서류심사, 면접, 최종심사 등을 거쳐서 국내 또는 해외에서 군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다양한 것들 (외국군 군사교육, 안보교육, 각종 전문학위)을 다른 기관에서 배워서 장차 군에 필요한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기여를 한다는 프로그램인데요. 저는 여기에 지금까지 총 세번을 지원했었는데, 그 중 저를 러시아로 가게 해준 첫번째 위탁교육 지원기를 공유하고자 해요.
낙담
생도생활 때부터 위탁교육에 관심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푸른 대학교 캠퍼스에 가서 두꺼운 책도 들고 다니고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같이 과제도 하고, 축제때 먹거리도 팔고 등등 보통의 대학교를 그리면 나올 법한 것들을 해보고 싶었던 듯 하네요. 임관을 하고 생도 때 친했던 친구가 위탁교육에 지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지원하는 자리마다 요구되는 군경력, 병과 등이 모두 다른데, 갓 임관한 저희는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자리가 있다네요. 생도 때 성적도 좋지 않았고, 교수님의 추천서도 필요하다는 말에 포기를 했어요.
포병장교로 일년을 보내고 제가 원하던 화학장교로 전과를 했어요. 저희 때는 처음에는 무조건 전투병과 장교로 임관했다가 일년 후에 다시 지원을 받아 기술행정병과 등으로 다시 분류가 났었거든요. 이제 새로운 병과에 왔으니 다시 초등군사반을 받고 있었는데, 그 도중에 위탁교육 선발공고가 다시 떴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의대 말고도 지원할 자리가 몇군데 더 있더군요. 그 중에 미국으로 가는 생물학 석사 자리가 있었는데 같이 화학병과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지원하기로 했죠. 일단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길래 생도 때 이후로를 공부도 전혀 하지 않았던 영어 공부를 대충하고 토익을 봤는데 제 기억으로는 한 580점 정도 나왔던 것 같아요. 서류 심사를 위해 영어성적을 포함해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2차 시험인 면접 조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죠.
병과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중에 면접 조가 발표되었다는 말을 듣고 친구와 확인을 해봤는데, 친구 이름만 있고 제 이름은 없더군요. 그래서 인사사령부에 전화해서 제 이름이 면접 조에 편성이 안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조금 찾아 보시더니 제 영어성적을 묻더라고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말씀 드렸는데, 굳이 면접에 올필요 없다 말씀하시더라고요. 뭐 저도 제 처지를 잘 알다보니 상심이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면접 조차 못갔던 건 조금 기분이 좋진 않았네요.
완벽한 기회
화학병과로 전과를 한 것도 제 인생 최고의 선택 중에 하나였어요. 화학 병과교에서 무작위 선별을 통해 저는 운좋게도 서울에 있는 사령부로 전속받게 되었고, 사령부 내의 화생방 부대에서 근무를 했었거든요. 서울에서 근무했던 것도 매우 좋았지만 제 부대 바로 옆에 군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좋은 선배들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주 큰 기회였던 것 같아요.
서울에 있는 부대에 가서 다른 훌륭한 선배들도 많지만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조언을 해주신 분은 저희 작전담당관이셨어요. 제가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소대장님, 서울에 왔다고 노는데에 시간을 많이 쓰시지 마시고, 제가 중대장님한테 이야기 할테니 퇴근 후에 영어학원이라도 다니십쇼" 그 말이 어찌나 와닿던지요. 우리 담당관님 덕에 일과시간에는 열심히 부대 업무를 보고 퇴근 후에는 영어를 배우면서 그렇게 부대 생활을 했어요. 영어 성적도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빠른 시일 내에 올릴 수 있었고, 이듬 해 위탁교육 지원 공고가 떳을때 지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죠.
공고가 뜨고 나서 보니 제가 쓸 수 있는 자리는 교수가 되는 미국 화학석사 자리와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는 병과의 러시아 핵물리학 석사 자리가 있더군요. 두 자리를 함께 쓰는 것은 안되고 한자리만 선택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생도 성적도 안좋았고 교수가 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기에 러시아 핵물리 자리를 선택하게 됩니다. 제 선배 중 한명은 이미 미국 핵공학을 다녀온 선배가 있는데, 핵공학 자체가 그리 인기전공이 아니고 게다가 러시아로 나왔기 때문에 아마 저 말고 아무도 안쓸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 그 선배는 육사 교수님으로 가서 후진양성과 한국의 이공학 발전에 이바지 하고 계세요. 여튼 용기를 얻어서 바로 러시아에 지원했고, 이번에는 괜찮은 영어성적이 있었기 때문에 서류 면접을 통과하고 2차 면접에 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았던 면접
다행히도 저는 살면서 면접을 많지 보진 않았어요. 육사 갈때 한번 봤고 위탁교육 지원할 때 본 정도죠. 다른 분들께서는 취업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면접을 보는 것 같아요. 면접이 육사에서 진행되었었지만 워낙 계급도 낮았고, 꼭 가고 싶은 자리에 되고 싶은 심정에 긴장을 많이 했어요. 면접장에 가니 많은 선배들이 와 있더라고요. 육사 선배도 많았고 모르는 선배들도 많았어요. 육본 인사사령부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나와서 면접을 총괄하여 진행해주셨고, 차례로 개별면접, 집단면접 등 인도해 주셨어요. 다른 것 보다도 마지막에 어떤 대령분과 일대일 면접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나지만 거의 선발 되었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다고 기억이 나네요.
러시아로 지원했기 때문에 미국이나 국내 학위를 지원한 사람들과 다르게 군의 어학을 담당하는 국방어학원에 가서 러시아어 시험도 따로 치렀어요. 그 때 저 말고 다른 선배 한 분이 오셨는데, 러시아의 지휘참모대학 과정을 지원하시는 분이었고, 이미 석사를 러시아에서 하셨기에 시험도 잘 보신 것 같더라고요. 저야 거의 찍다시피 했지만요. 뭐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다행히 합격을 해서 이듬해 8월에 러시아로 나갈 수 있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을 많이 하고 왔어요.
위탁 교중중에 있었던 일들은 너무 많기에 나누어서 포스팅하도록 할게요. 이글을 읽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하며 이만 글을 줄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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