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미국에 왔었던 조카들 중 첫째가 또 오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처음에는 빈말인지 알았는데 점점 진짜 올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처형이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오는구나 싶었죠. 비행기는 2025년 1월 9일, 인천공항에서 댈러스로 오는 직항 편이었어요.
1월 9일은 목요일이라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가기도 애매하더라고요. 저희 애들도 학교 빠지기가 좀 힘들고 댈러스에서 딱히 할만한 게 마땅치도 않았고요. 아내는 잃어버린 여권도 재신청을 해야 할 겸 댈러스에 가야했기에 서류를 꼼꼼히 챙겨서 여권 신청과 댈러스로 오는 조카를 픽업하는 임무를 맡겼어요. 미국에서 여권을 신청하고 우편으로 받으려면 반송용 봉투를 사서 가야하는데 제가 깜빡 잊고 있었어요. 그래서 1월 9일 당일에 사려고 하니 Jimmy Carter 미국 전 대통령의 추모식으로 우체국이 영업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반송용 봉투 없이 아내를 댈러스로 보냈죠. 영사관에서 뭐라도 알려줄거라 기대하면서요.
댈러스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숙소를 잡는게 나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길 상태가 너무 않좋아 밤 운전이 어려워 보인대요. 그래서 일단 저렴한 숙소를 공항 근처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영사관(사실은 주휴스턴 대한민국 총영사관 댈러스 출장소)에 갔는데 영사관 또한 업무를 안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조카가 올 때까지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일이 좀 이상하게 꼬였습니다. 날씨가 너무 안좋아서 댈러스로 가야 할 비행기가 로스앤젤레스로 가버린 거에요. 조카는 로밍서비스를 신청해놓았기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조카와 연락이 바로 되었습니다. 조카가 말하기로 최초에는 피닉스로 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고 기름이 좀 남아서 상공에서 빙빙 돌다 결국 로스앤젤레스에 착륙했다 하더라고요. 만 14세인 조카가 혼자 예기치 못한 일을 겪게 되니 형님과 처형도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비행기에 내려서 짐을 찾고 나니 다음 날 아침 8시에 댈러스로 출발하는 비행기로 예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조카는 오후 1시 반 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기에 거의 꼬박 하루를 기다리게 된거죠. 항공사 사이트를 확인하니 자신들로 인해 항공편이 변경된 경우 밀(음식)바우처와 숙소바우처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갑작스런 날씨 변화 때문인지 조카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밀바우처와 숙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대요. 밀바우처는 받았으나 성인이 아니라 숙소 체크인을 할 수 없어 공항의 라운지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카는 저에게 라운지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으나 2인용 소파가 있는 안내요원 사무실이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먹을 것도 어찌저찌 잘 먹고 있었고 조금은 피곤하겠지만 댈러스까지만 오면 며칠 편히 쉴거니까 좀 더 힘내라고 말해줬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운이 안좋은 것 같다며 투덜거리더니 나름 라운지에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잘 지낸 듯 하더라고요. 인스타 친구들도 만들고 여러 사람들이 와서 음료랑 이것저것 챙겨줬다고 했습니다. 30분마다 누군가 와서 챙겨서줘 인싸가 된 느낌이라고도 하더라고요. 잠은 잘 못잔 것 같지만 그래도 먹을 것도 잘 먹고 간식까지 야무지게 바우처로 사서 먹고는 마침내 댈러스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카를 도와주던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 우여곡절은 좀 있었지만 결국 댈러스로 향할 수 있었고, 날씨로 인한 항공편 변경에는 바우처 제공이 안될 수도 있는데 바우처도 야무지게 잘 써서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알려줬죠. 귀가 얇은 조카는 그 말에 운이 나쁜 아이에서 운이 아주 좋은 아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조카가 댈러스로 오는 동안 아내는 영사관에서 일을 잘 처리하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주차장 입구를 못찾아서 한참을 헤매고 있을 때 조카가 착륙을 했고 짐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2시 반쯤 도착한 조카는 짐을 찾았지만 만 15세 미만이기에 공항 밖으로 보호자 없이는 나갈 수 없다 하더군요. 마침내 주자창 입구를 찾아서 헤매던 아내가 주차를 잘 완료했고 조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3시 반에 공항에서 집으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컨드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무사히 마친 기분에 마음이 안심이 되더라고요. 아내와 조카는 잘 오고 있으니 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뒤 함께 저희 이웃의 생일 초대에 갔어요. 6시 반이 되서 조카가 도착했고 전 한 시간 더 술을 마시다가 집에 들어갔네요.
내 생각에 조카는 잘 이해안되는 영어를 최대한 듣고 이해하려 해보며 아리송한 정보들을 조합하는 동안 아주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흘려서 하는 말에도 불안했다가 또 안심이 되었다가를 반복했던 것으로 보이네요. 이번 상황이 차분히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경험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거의 두 달간 함께 지내야 하는데 이모부이자 멘토로서 잘 이끌도록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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