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은 만으로 6살 그리고 5살이다. 아이들은 종종 나에게 지금이 몇 시냐고 묻곤 했다. 아이들로서는 궁금할 것 같았다. 이제 집에 가야 하는지, 놀아야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학교에는 언제 가야 하는지 그 답을 스스로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언제나 부모가 10분 남았다와 같은 말로 일러주고 다급하게 늦었다는 고함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말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이 어쩌면 나침반 하나 없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기분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나침반을 가진 든든한 어른이 옆에 있으니 물어보면 되긴 했지만 말이다.
뭐 시계하나 사주면서 이렇게 말을 많이 하나 싶을수도 있는데 내게는 의미가 크다. 왜냐면 요즘 나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왜곡해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기준점이 필요하다. 가령 내가 논문을 썼다고 하자. 초안을 다 쓰고 읽어보고 또 읽어본다. 왠지 모르게 이번 논문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하지만 논문을 제출하고 나면 리뷰어로부터 많은 수정요구를 받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러니 잘 쓴 다른 사람의 논문들을 기준 삼아 다시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AI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한다. 무어의 법칙처럼 어쩌면 세상은 선형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마다 지나면 2배로 늘어나는 지수법칙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기준으로 다시 세상에 대해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상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변하고 있다. ChatGPT가 나에게 급격하게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텍스트를 동영상으로 변환시키는 AI 기술은 나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망망대해 같은 세상 속 물살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나침반이 있다면 내가 가는 방향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시계를 사줬다.
이 시계가 아이들에게 나침반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간혹 시간을 감옥이라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시계는 족쇄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고 익숙해진 사람은 미래에 시간을 지배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시간 또한 살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겨우 시계 하나지만 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본다. 흔들리더라도 방향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아이들에게 시계를 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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