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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군생활 1년차

Jeongwon Seo 2022. 8. 12. 22:29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저마다의 무용담이 있죠. 하다못해 공군 운전병으로 간 친구도 친구들끼리 만나면 목소리가 가장 크더군요. 45인승 버스를 혼자 치우는게 얼마나 힘든지 말하면서 말이죠. 같이 만난 다른 한 친구는 수색부대, 저는 육사에 다니고 있었으니... 여튼 저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은 1년차 군생활을 보냈는데요. 아무래도 저의 어려움은 대부분 육사에서 받았던 교육과 실제 야전에서의 괴리감에서 오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네요. 그럼 거두육미(?)하고 시작해 볼까요.


근무지 랜덤추첨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졸업할 당시에는 소위 무작위 추첨(뺑뺑이)을 통해 근무지를 선정했거든요. 먼저 큰 강당에 다 같이 모여서 이 추첨이 무작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범으로 뺑뺑이를 돌려봅니다. 그러면 각 사단, 군단 등의 부대별로 분류 결과가 나오죠. 자신의 이름 옆에 어떤 부대가 쓰여 있냐에 따라 시범 뺑뺑이에도 희비가 교차 한답니다. 이렇게 긴장감을 한껏 더 불어넣은 후에 이제 실제 추첨을 하는데요. 제 이름 옆에는 지금은 없어진 26사단, 불무리 부대가 적혀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사단 본부가 양주에 있다고 해서 너무 좋아했는데 본부만 양주에 있고 포병들은 다 연천쪽으로 올라가 있다고 해서 낙심을 금치 못했죠.


포병학교 시절

일단 부대는 알겠고, 먼저 초임장교로서 초등군사 교육을 받으러 장성에 내려갔어요. 가서 따끈따끈한 포병 초급장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 지식들을 익혔지요. 저희 동기 30명 정도가 포병에 같이 갔었고 수업도 같이 들었기 때문에 3사에서 온 친구들을 만난 것 외에는 뭐 사관학교와 크게 다를건 없었죠. 아! 또 다른 것 중 하나가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 정도? 아래는 같은 방을 썼던 동기들과 한 컷 박은 사진이네요.

따끈따끈한 오만촉광 포병 쏘가리 룸메들

사실 보이는 사진과 다르게 포병학교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재미있진 않았어요. 상무대는 뭔가 항상 안좋은 기운을 저에게 주는 것 같기도하고 별로 좋은 추억이 없네요. 이렇게 약 4개월 가량의 군사교육을 받는 동안 자대에 잠시 가보는 기간도 있어서 교생처럼 다녀오기도 했죠. 여하튼 교육을 마치고 나면 짧은 휴가 후에 자대로 가게 되는데요. 저희 부대는 어디 폭포 옆에 있었는데 훈련다니면서 종종 봤지만 볼만하진 않더라고요. 

 

관측장교의 임무

전면전 때 포병은 당연히 포를 끌고 나가서 사격을 지원해주지만 적의 게릴라가 활동하는 상황에서는 보병들처럼 나가서 포위망을 구성하고 적을 섬멸하는 임무도 맡고 있어요. 제가 근무했을 당시에 저희 부대는 5분대기조도 운영하고 있었기에 처음에 가서는 당직근무, 5분대기조, 각종 교육훈련(집체교육/경연대회 포함), 게다가 사단장님께서 지시하신 매일 3km 구보 등으로 체력적으로 쉽지는 않았죠. 게다가 저는 관측장교였기에 제가 지원해줘야 하는 부대가 훈련을 나가면 거기도 따라가고 저희 부대 훈련있으면 또 따라가고 그래서 정말 일년의 3분의 1 정도를 야외에서 잤던 것 같아요. 그래도 본연의 임무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만 힘이 들었던 것 같네요. 저는 관측장교라 관측병 2명만 데리고 있지만 포대(약 70-80명 규모) 병사들은 항상 같이 지내고 그 친구들도 저를 그냥 소대장으로 부르고 다녔기에 항상 작업도 같이 하고 그랬네요. 힘든 시절 저와 같이 시간을 보내준 지금은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 된 전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건아들

시련 그리고 성장

어느 큰 훈련에 나갔는데 여단장(대령)님이 저를 개인적으로 부르더라고요. 가서 차를 한잔 마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초급장교가 열정이 넘쳐서 그럴 수 있다며 괜찮을 거니까 걱정말고 앞으로 잘 하면 된다고 하셨죠.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부대에 복귀하고 나니 포대장님이 제 징계심의가 있으니 일단 근신하고 있으라 하더라고요. 사유인 즉, 병사들의 마음의 편지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고 하네요. 남탓보다는 우선 저의 잘못을 먼저 고백하고 싶어요. 병사들에게 거친 말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친말이 더 나쁠수도 있기에 진심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저의 이런 잘못을 인정합니다. 소위로서 할 수 있는게 없음을 알고 부린 투정이 전우들에게 상처를 주리라 생각못한 점도 잘못했고요.  여튼 이런걸로 징계까지 받나 싶을텐데 병사들이 이런 말 외에 "죽고 싶었다" 이렇게 쓰면 일이 그렇게 되긴 하더라고요. 자세한 내용은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도록 할게요. 

 

새로운 부대 그리고 이별

다행히도 징계심의는 반성하는 기미가 보인다는 사유로 경고장으로 끝났지만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이후로 옆부대로 가게 되었고 전우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부대에서 너무 잘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 했던 것들이 군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떨칠수가 없었네요. 그렇게 새부대에서 적응하여 잘 지내던 중에 병과(군대의 전공 혹은 주특기)를 전환할 수 있다는 공고를 보았어요. 전부터 가고 싶었던 화학병과도 뽑는다고 하니 지원을 안할 이유가 없었죠. 다만 3명만 뽑기 때문에 동기들끼리의 눈치 싸움이 조금 있었지만 다행히 2명 밖에 지원하지 않아서 전과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부대 전출일이 발표되고 전출일 전날 당직근무를 서면서 전우들에게 손편지를 하나씩 썼어요. 그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 나누어 주고 아침점호를 마지막으로 헤어질 시간이었죠. 전우들이 많이 아쉬워 하던게 아직도 생각나네요. (반박시 네말이 다 맞음)

나의 전우들, 모두 사랑합니다. (반박시 네말이 다 맞음)

소감

어떤 사람은 어떤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현실을 빨리 파악하죠. 저의 1년차 군생활을 돌아보면 저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인간관계에 서툴렀고 진심만으로 밀어 붙였던 것 같네요. 즐거웠던 기억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무엇보다 많이 배우고 떠난 1년이었어요. 사회 초년생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누구나 처음부터 다 잘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께 제 이야기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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