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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위탁 교육 합격기 (미국 핵공학)

Jeongwon Seo 2022. 9. 30. 11:03

지난번 러시아 위탁 지원 포스팅에 이어 이번 포스팅에는 미국 핵공학 박사과정 지원 과정에 대해서 여러분께 이야기를 들려드렸으면 하네요. 이전 포스팅과 조금 중첩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지만 길지 않을 듯하여 웬만하면 두 포스팅 다 독립적인 이야기로 풀어볼까 하네요. 다만 저의 개인적인 경험담이기 때문에 매년 같은 내용이 적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저처럼 해야 합격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닌 저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네요.


러시아에서 2017년에 귀국한 후에 2018년도에 시작하는 위탁교육 지원을 바로 받더라고요. 선발 시기는 현재 육군 홈페이지에서 보면 계획하달은 7월 심의는 9월이라 나오는데, 올해의 선발은 예년보다는 조금 일찍된거 같더군요. 지금이 8월 말인데 벌써 선발이 되었다는거 보니까요. 매년 일정은 조정되니 공지 확인이 필요해요.

 

태양의 후예에 나온 윤명주 중위의 경우도 위탁교육의 한 예이다.

 

제가 7월 15일에 귀국했기에 바로 다음 교육에 지원할 수 있었어요. 마침 미국으로 가는 핵공학 연구직 자리가 한자리 나와있더라고요. 다행히 영어점수는 5년까지 유효하다고 하여 이전에 러시아 위탁교육 지원할 때 냈던 영어점수를 다시 냈습니다. 보통은 2년간 유효한데 다행히 제가 선발할 때는 5년이어서 너무 다행이네요. 러시아에서 석사를 하니 많은 분들이 저한테 영어 잘 할거라고 하시던데, 러시아에서 영어 쓸 일도 없었고 러시아에서 영어는 모두 영국식인데다가 발음도 너무 별로여서 영어를 배우기 쉽지도 않았어요. 여튼 결론적으로 영어는 잘 못했습니다. 특히 말하기나 쓰기는 너무너무 못했죠. 그렇게 다행히도 첫번째 관문인 영어시험은 되었나 싶었는데, 선발과정에서 새로 바뀐게 영어 말하기 시험 (오픽, 토플 등) 성적도 제출해야 하더라고요. 그 점을 간과한 채 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1차 지원 불합격

영어 말하기 시험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서류 심사는 통과할 수 있었고 면접조에 편성이 되어 육사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부대에서 저와 같은 자리에 지원한건 아니지만 저 말고도 위탁교육에 지원한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다같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다들 지원한 자리가 달라서 면접을 같이 본건 아니지만요.

 

석사를 지원할 때랑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라고요. 당시에는 인헌관이라는 아주 오래된 건물에서 면접을 봤었는데, 계급장과 이름을 가리지도 않았었고 먼저 면접자들이 오면 다 같이 한 곳에 모여서 출석 체크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다 같이 한 공간에 있는게 아니라 대기 공간도 지원분류 별로 다르게 되어 있어서 같은 방에 있는 사람 외에는 누가 더 왔는지 알 수도 없었고, 계급과 이름을 다 가리고 있어서 생도 때 잠시 봤더라도 졸업하고 얼굴이 조금 변한 선후배들은 알아보기 힘들더라고요. 뭐 그렇게 안다고 중요한 건 아니지만 다들 준비해 온 자료만 읽기 바빠서 그런지 긴장감이 좀 흐른다고 느껴졌어요.

 

 

면접은 개인면접, 집단면접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인면접에서는 본인이 지원한 국가, 특히 학과에 대한 질문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질문들, 예를 들면 정훈교육 시간에 배우는 것들을 받고 대답을 해야하고요. 종종 갑작스러운 특이한 질문을 하시는 면접관님도 계십니다. 집단토론에서는 한 주제를 가지고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시간이 있는데 제가 속한 조가 받은 질문은 사드 배치에 관한 찬반 토론이었어요.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는 쪽에서 발언을 하긴 했는데 긴장을 많이 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도 나질 않네요. 

 

면접이 끝나면 알아서들 자대 혹은 집으로 가면 됩니다. 전에는 면접은 면접이고 다 끝났으면 아는 사람들끼리 점심도 먹고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다들 돌아가기 바쁘더군요. 저도 올 때는 부대 사람들이랑 같이 왔는데 다들 끝나는 시간이 달랐고 뭐 저희 조에서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바로 부대로 복귀했어요.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심사 결과를 받아봤는데 제 이름이 없더라고요. 실망도 잠시, 다행히도 제가 지원한 자리에는 적합한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뽑히지 않았기에 다시 지원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2차 지원 

1차 지원에 떨어지고 나니 너무 후회가 많이 되더라고요. 지원자격 같은 것도 좀 더 꼼꼼히 읽어보고 영어 성적이나 면접 준비도 더 하고 갔으면 좋았을 걸. 그렇기에 두 번째 지원할 때는 영어 말하기 성적도 제출했고 조금 더 꼼꼼히 면접을 준비했어요. 1차 지원의 실패 때문인지 면접 갈때는 더 떨렸던 것 같은데 면접관님의 엉뚱한 질문에 긴장감이 많이 누그러 들었던 기분이 드네요. 질문은 "만약 서대위가 위탁교육에 합격한다면 누가 가장 슬퍼할 것 같나?" 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거의 합격했기 때문에 물어본 건가 싶기도 한데 당시에는 정말 많이 당황했거든요. 물론 좋은 의미에서요. 뭐 일단은 머리속에 저희 부서 과장님 얼굴이 지나갔지만 저희 어머니가 가장 슬퍼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어요. 뭐든 얘기했어도 상관 없었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드네요. 그 후에도 또 1차 지원 당시와 마찬가지로 집단 면접을 치르고 귀가를 했네요.

 

 

뭐 결과야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운좋게 합격을 해서 지금 미국에서 국가의 지원으로 박사학위를 열심히 하고 있죠. 또 저희 가족과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것도 들려드리면서 포스팅을 마무리 할까해요. 저희가 결혼하고 바로 러시아에 갔었고 2017년 7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이 위탁교육에 지원했기에 때문에 한국에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일단 부대에서 아파트를 제공해 줘서 살 곳은 있었는데 뭐 텅빈 집이었죠. 위탁교육 결과에 따라 향후 계획이 다 결정되기 때문에 일단은 아무것도 안사고 선풍기와 세면도구만 들고 텅빈 집에서 평일에 지내다가 주말에 처갓집에 내려가 지내고 있었거든요. 저희의 계획은 이번에 떨어지면 그래도 살림을 구매하고 붙으면 다시 중고를 좀 쓰다가 다시 팔고 무살림으로 또 외국에 떠나는 거였죠. 좋은 결과 덕(?)에 저희 와이프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살림살이가 없네요. ㅎㅎ 박사 학위를 다 마치면 정말 제대로 된 걸 다 살거라는 담대한 와이프의 포부를 기리며 이번 포스팅을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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