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나누는 사람

모두에게 더 넓고 더 깊은 세상을 향해

도서 탐톡/소설 및 문학

[도서 리뷰] 박사가 사랑한 수식

Jeongwon Seo 2023. 2. 28. 23:49

 

얼마전에 교회를 갔는데, 여기 퍼듀 지역에 계시다가 좋은 곳에 일자리를 잡으셔서 이사가시는 분께서 본인 도서를 무료 나눔 해주셨더라고요. 책을 수집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이것저것 챙기긴 했는데요. 그 중 조금 얇아 보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먼저 펴서 읽어보았어요. 소설이 재미있긴한데, 한 번 읽고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소설은 잘 안사는 편이거든요. 지금 집에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전자책으로 갈아타려 생각 중이긴한데, 소설한테 괜스리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여튼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오가와 요코"라는 일본 작가의 책이었는데요. 일본 문학의 향기를 잘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긴 여운이 남았지만 리뷰는 짧게 남길 수 밖에 없는 저의 문장력을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몇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사는 쌍둥이 소수를 동그라미로 에워싸면서 말했다. 박사의 수업을 들으며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그가 모른다, 알 수 없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모른다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향한 길잡이였다. 그에게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예상에 담긴 사실을 가르치는 것은 이미 증명된 정리를 가르치는 것 만큼이나 중요했다. 

줄거리

이야기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여자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되는데요. 직업소개소로부터 알선되어 가게 된 의뢰인의 집은 여러모로 평범하다는 것과는 달랐죠. 안채에는 형수가 있었고, 책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박사"라고 불리는 인물은 별채에 살고 있었어요. 박사는 30년전 사고를 당해 80분 정도만 기억을 유지할 수가 있었고, 정확히 80분이 지나면 그 전 기억은 사라지고 말죠. 여기까지만 봐도 슬픈 결말이 예상되는 것 같더라고요. 

 

박사는 항상 모든 걸 수학과 연결지으려 해요. 주인공의 생일이 2월 20일이라는 것을 자신이 애정하는 숫자 284와 연결하며 우애수라고 하죠. 별것도 아닌 것에 감탄하고 신의 수첩에 적힌 내용들을 사람이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수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외에도 다른 수학 관련(정수론) 개념들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모든 걸 수학과 연관시키는 박사였지만 주인공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알게된 박사는 주인공의 아들을 주인공이 일하는 동안 같이 머물도록 합니다. 주인공 아들이 머리가 평평한 것을 보고는 "루트"라는 멋진 별명을 지어주죠. 그렇게 주인공, 그녀의 아들, 박사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이발소, 병원에 간 에피소드,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야구장에 간 이야기들까지, 박사는 80분 밖의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그들 사이의 추억은 하나 둘 소복히 쌓여갑니다. 

 

주인공은 야구장에 간 이후로 박사의 건강이 악화되고 가사도우미의 제한사항을 어겼다는 제보로 다른 곳으로 배정받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씨의 주인공이었기에, 자신을 자책하며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사도우미가 박사를 잘 보살펴줄지 하는 걱정에 일도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쯤 지났을까요. 주인공의 아들이 박사를 멋대로 찾아가는 일이 벌어져 다시금 박사의 집에 가게됩니다. 박사의 형수는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주인공에게 추궁을 하지만, 박사가 돌연듯 내민 수식 한 줄을 보고는 주인공을 다시 박사의 가사도우미로 고용하게 됩니다. 박사가 적은 수식은 오일러의 공식으로 우주의 비밀을 한 줄에 담든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은 어떻게 이 식이 박사의 형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생활하게 된 세 사람, 10살이던 주인공의 아들은 11살이 되는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주인공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박사는 80분의 기억조차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요양원으로 가게 됩니다. 

 

주인공의 아들인 루트는 무럭무럭 자라나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되었고, 박사와 함께 한 추억을 되새기며 아이들에게 수학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줍니다. 박사는 80분도 기억 못하지만 주인공과 루트를 주기적으로 박사를 찾아가 시간을 보냈고 이렇게 이들의 추억은 책 한권에 고스라이 담기게 됩니다. 

 

짧은 감상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책에 여운이 정말 오래 남았어요.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일본 문학은 뭔가 그런 느낌이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추억이라는 단어에도 마음이 울컥할 때가 많네요. 올해는 아내와의 결혼 10주년이라 그런지 한국에서의 추억, 세계 곳곳을 다니던 추억, 아이들이 태어나고 함께한 추억들이 하나하나 자꾸 쌓여서 그런지 소설 속 추억도 쉽게 저의 추억에 투영이 되는 듯 싶네요. 결말은 조금 밋밋한 듯 했지만 수학의 아름다움, 괴짜스러운 천재와 마음 따뜻한 가사도우미, 그리고 그의 아들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728x90
반응형

'도서 탐톡 > 소설 및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 리뷰] 오만과 편견  (0) 2022.12.28
[도서 리뷰] 조지 오웰의 1984  (0) 2022.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