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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각성에 대해서

Jeongwon Seo 2021. 9. 6. 09:07

이번 포스팅에서는 각성에 대해 제가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풀어보고자 해요. 각성이라는 말 가끔 들어보셨죠? 저는 무협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런거 있잖아요.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주위의 사물이 느리게 보이고 그런거 말이에요. 아니면 요즘 나오는 마블 영화들만 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토르가 네가 망치의 신이냐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번개를 사용하게 되는 여튼 그런 것들 말이에요. 여러분들은 살면서 각성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없다하시는 분들은 아직 그게 각성인지 몰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어요. 정말 순수한 잡설로 제가 경험했던 각성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철 없던 학창 시절, 첫 번째 각성

 

저는 어렸을 적 정말로 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대로 씻고 다니지도 않고 컴퓨터 게임만 주구장창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주변 친구도 만들고 사회생활 비스무리 한 것도 하라고 하셔서 중학교 때부터인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너무 몰랐으니까 매주 간식도 주고 친구들도 사귀니 너무나도 좋았죠. 토요일인가도 가서 성가대도 하고 성경 암송 대회도 나가서 줄줄 외고 그랬습니다. 물론 지금은 주기도문 빼고는 다 까먹었지만 다 추억이죠. 그러던 저에게도 봄날이 찾아왔습니다.

교회에서 알게된 그녀는 피아노도 잘치고 공부도 잘했고 당시 제눈에는 엄청 예뻐보였어요. (위 사진 아님) 어찌저찌 반 사귀는 상태까지 간 것 같은데요. 제가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여보 다 지난일이야) 하루는 제가 그녀의 집에 바래다 줬는데요. 그녀 집안은 매우 보수적인 집안이기도 했는데, 그녀 아버지가 왜 저런 애를 만나냐 하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천안에 있는 새로 생긴 고등학교에 1회 입학생으로 입학했는데 사실 그 고등학교가 생기지 않았다면 공고나 상고를 갈 수도 있었죠. (비하하는 게 아니라 커트라인이 그랬어요) 뭐 마땅히 그런 말 들을 수도 있다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충격이 컷나봐요. 그 날 이후로 공부를 좀 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단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고2 때까지도 놀은 것 치고는 성적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더라고요. 모든 수험생 분들 응원합니다. 그래도 워낙 공부를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좀 따라가긴 버거웠던 것 같아요. 나름의 성과가 있었던 시기라고 자평을 합니다. 

 

재수학원, 2차 각성

 

결국 원하는 학교에 갈 성적은 안되고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뭐 저희 어머니가 결심하시긴 했죠. 어머니는 제 성격을 엄청 잘 아셔서 강제로 시켜야 제가 공부한다는 것 쯤은 진작에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살던 천안에도 재수 학원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집이랑 왔다갔다 하면서 공부하면 집중에 방해가 될까 저를 기숙학원에 보내셨습니다. 

위 사진은 제가 다닌 곳과는 영 상관없는 다른 기숙학원인데 화이팅이 넘쳐보여서 올렸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하셨는데 마침 제가 재수를 할 무렵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기숙학원의 한달 학원비는 150만원이었는데요. 식비, 숙소, 수업료 정도가 포함되어 있었고, 간식, 교재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서만 한 달에 거의 200만원을 썼으니, 너무나도 죄송스러웠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정말 한번 불태워 보기로요. 그래도 불씨는 꽤나 오래 갔던 것 같아요. 성적도 정말 많이 올랐고 이젠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어느정도 선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했던 것 같아요. 이 때가 제 인생의 두번째 변곡점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더욱 쉽지 않았았는데요.

 

징계, 그리고 경고장

 

저는 그렇게 재수학원을 마치고 육사에 입학을 합니다. 저는 훌륭한 생도랑은 아주 거리가 멀었고요. 그렇다고 질 안좋은 생도도 아니었어요. 다만 공부를 별로 안했었죠. 뭐 체력도 다른 동기들에 비해 별로 좋지 않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울고싶다) 제가 다니던 시절에는 동기생 평가를 매 학기 진행했는데 거기서 저열을 두 번인가 받으면 퇴교 심의에 올라가서 심판을 받습니다. 저는 두 번 받았던 것 같네요. 기초군사훈련 당시 같은 방을 쓰던 동기도 같은 처지라 같이 법당에 가며 자진해서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시기는 잘 버텼고 공부도 쪼~금은 했고 (그래봐야 등수가 3분의 2정도...) 동기들과도 원만히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리더십과 팔로우십을 배울 수 있었고 정말 제 2의 고향처럼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렇게 많은 것들을 배우던 저에게도 정말 자의가 아닌 타의로 퇴교를 당할 뻔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퇴교 다음으로 무거운 징벌인 중징계를 받았는데요. 그 당시 대부분의 심의위원들이 퇴교를 말할 때 기회를 한 번 더 주자고 했던 우리 훈육관님 이번 자리를 빌어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눈물로 회게한 결과 50일의 중징계를 받았는데요. (최대 90일) 

징계를 받게 되면 일과시간에는 동기들과 같이 지내지만 저녁 식사 후 개인시간에는 일정 공간에 모여서(징계 받은 사람들만) 반성문도 쓰고 자습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반성도 많이 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세상 보는 눈이 조금 넓어졌다고 할까요. 앞으로 뭘 해야할 지 방향을 좀 세운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수정이 많이 필요하지만 뼈대는 이 시절 세웠던 것 같네요. 이런 류의 각성을 달갑지 않지만... 소위로 임관하고 나서 한 번 더 겪게 됩니다.

 

다행이 징계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대통령께 임명장을 받고 육군 소위로 임관을 했습니다. 기본 교육을 마치고는 전방부대에 배치를 명 받아 연천으로 떠났습니다. 야전은 역시 쉽지 않더군요. 이론과 현실의 괴리라고 할까 당시 앞뒤 꽉막힌 소위였던 저에게 더욱 힘든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중에 새로 육사출신의 대대장님이 오셨는데 인사분야에 근무하셨다고는 들었거든요. 와서는 병사들의 소원수리를 하나하나 꼼꼼히 보셨나봅니다. 저의 말실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저 때문에 군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잘못한 건 충분히 이해를 했습니다만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너무나 많았어요. 제가 잘했다고는 그 때도 지금도 생각하진 않습니다. 여튼 제 기억으론 당시 부대 병사들의 죽고 싶다는 등의 소원수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셨던 대대장님이 저를 심의에 넘겼던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는 가운데 저는 조금 큰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훈련 1부와 2부 사이에 시간이 있었는데 당시 여단장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군생활 하면서 그런 일도 있는 거라며 별일 없을거라 하셨죠. 그리고는 낙담하지 말고 열심히 군생활을 하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무슨 일이 벌어지도 있는지도 모르며 훈련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알다가도 모를 말을 듣고는 훈련 후에 다시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복귀하고 보니 포대장님께서 개인적으로 저를 부르셔서 여단에서 심의를 하고 있으니 방에서 자숙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다음 날인가 며칠 뒤인가 여단에서 군수장교인가 나와서 욕을 하며 저보러 반강제로 자백서 같은 걸 쓰라하더군요. 정말 군생활 위기였습니다. 병사들의 군기가 너무 형편없었고 아무도 안알아주는데 나만 열심히 하려다가 피해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자괴감이 들었고, 누굴 위해 군생활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네요. 그렇게 충격적인 진술서(자백서?)를 쓰고 갑자기 일전에 여단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더라고요.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다행히 여단장님 말씀대로 걱정할 정도의 징계는 없었고 여단에서 경고장이 한장 날아왔고 저는 옆 포대로 강제 전출을 당합니다. 이 때는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 사자성어로는 "역지사지"에 대해서 배웠던 것 같네요.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건 아니라는 걸요. 

 

한 마디

 

저의 약간은 드라마틱한 경험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그 후에도 학업적으로도 깨달음이 있었지만 조금 지루할 수 도 있을 것 같아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뺐습니다. 여러분이 느끼고 있지 못할 수도 있지만 몇번 각성을 하셨을수도 있어요. 거창한 깨달음이나 각성이라는 말보다는 세상을 보라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표현다는 게 사실은 더 어울릴 것 같네요. 꼭 겪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겪고 싶다고 마음대로 겪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 온뒤에 땅이 굳어 지듯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계시는 분들 힘내시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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