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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중반기 (코로나 중)

[경험] 역기러기 아빠로 1년 반

Jeongwon Seo 2022. 6. 6. 10:34

처음 온 미국에서 처음 길러보는 아이들, 교수와의 연구, 과제 등으로 미국에서의 시간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어요. 둘째를 2019년 11월에 낳고 같은 해 말 또는 2020년에는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해서 쉽지 않던 미국 생활이 조금 더 빡빡해지는 계기가 되었죠. 그나마 첫째가 어린이집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니고 있어서 그나마 아내도 몸조리를 하고 저도 연구실에서 공부도 할 수 있었는데요. 여름 즈음에는 코로나 확산 때문에 어린이집도 문을 닫는다고 하여 온가족이 꼼짝없이 집에 갖혀 지내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타고 간 비행기

둘째는 너무 어렸고 게다가 좀 보채는 아기여서 아내도 많이 힘들어 했고 첫째는 말이 좀 느린거 같은데 일도 해야하는 제가 해줄게 별로 없어서 동영상을 많이 보여준거 같아요. 지금도 말이 좀 느린거 보면 가슴이 아프네요. 2021년이 되었고 도저히 이렇게는 애들한테도 아내한테도 그리고 저한테도 별로 좋지 않을거 같아서 가족들만 한국에 보내기로 했죠. 그렇게 혼자서 1년 반 정도를 살았네요. 보통의 기러기는 한국에서 벌어서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데 저는 반대로 외국서 벌어 한국에 보낸 가족들에게 보내서 역기러기가 되어 버렸네요.

아빠없이 한국으로 가는 아가들, 다행히 비행기 좌석은 여유가 많았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내와 결혼하고 떨어져 지내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제가 지켜야 할 가족들이 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게 더 힘들더라고요. 시카고에서 가족들을 보내고는 마트에 들러서 생존하기 위한 여러가지를 샀어요. 평소엔 잘 먹지 않는 홍삼도 사보고 식재료와 간식, 한국 맥주도좀 사서 집으로 돌아왔죠. 그렇게 시작된 홀로서기(?). 퇴근하고 집에 오거나 주말에는 혼자 냉장고에 남은 것들을 꺼내서 요리하고 혼자 차려서 먹었어요. 조금 정서적으로 힘들었는지 학교에서 보내온 정신상담에 관한 이메일이 있었는데 진지하게 한 번 가서 해볼까 생각도 해봤죠. 그래도 뭔가 내가 아직 그정도는 아니잖아하는 자기 최면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아가들, 고생했어 미안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차차 혼자 사는 생활도 적응이 되더군요. 그동안 진척이 많지 않았던 연구도 착실히 진행해서 좋은 논문도 쓸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행히 한국에서 포스트닥터로 온 친구가 있어서 출근도 같이하고 식사도 종종 같이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러 가며 시간을 보내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김박사 고마워~ 새 직장 가서도 열심히 하고 자주 봐!

한국에서의 자가격리 기간

이제 곧 있으면 가족이 온다니 마음이 설레네요. 주말마다 조금씩 가족들이 올 준비를 하고 있어요. 침대도 조립해 놓았고, 커버도 다시 빨아서 씌워 놨고, 창고에 있던 아이들 카시트도 꺼내서 차에 장착을 해놨어요. 6월 12일에 학회에 갔다가 학회 끝나고 바로 한국으로 가려고요. 빨리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수도 있는 1년 반이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라지만 각자에게 나쁜 시간이 아니었길 바래요. 또 하라면 글쎄요. 애들이 다 크면 모를까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헛되이 보낸 시간도 있지만 나름 유익하게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어요. 이제 곧 재결합 할 우리 하하가족(하은이, 하성이)이 행복하길 바래주세요. 글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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