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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생활/2년차

[러시아생활] 나 홀로 러시아 시골 여행

Jeongwon Seo 2022. 7. 16. 01:21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아내 없이 혼자 다녀온 러시아 시골 여행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 학과와 아내 학과의 학사 일정이 끝나는 날이 서로 달랐는데, 제 시험이 먼저 끝났고 아내는 어디 가기 싫다고 해서 나는 나홀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어요. 나홀로라고는 하지만 친구들 집에 방문한 것이라서 뭐 대단한 여행기는 아니고요.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제일 먼저 간 곳은 러시아 오자마자 사귄 나스쨔라는 친구의 동네에 방문하기로 했어요. 작은 동네라 볼 건 많이 없다길래 12일만 계획을 했고, 친구가 남는 방에서 자라고 해서 숙소도 잡을 필요가 없어서 너무 편했네요. 친구의 고향은 카브로프라는 동네인데, 구글에 검색해도 안나오는 걸 보면 다녀온 한국인은 극히 드물 것 같네요. 출발하는 당일은 카브로프로 가는 직행열차가 없다고 하여 일렉트리치카라는 교외철을 이용하여 블라지미르라는 조금 큰 도시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탔어요. 한 시간 정도 걸렸을까, 카브로프에 도착을 했고, 일단 나스쨔의 어머니를 뵙고 인사를 드린 다음, 나스쨔의 집으로 가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어요. 나스쨔가 냉장고에 어머니가 해놓은 음식을 꺼내 놓았는데 역시 저랑은 입맛이 맞지는 않는 것 같네요. 

러시아인들이 워낙 산책하는 걸 좋아해서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일단 밖으로 나와서 구경을 했어요. 동네가 작아서 교통 수단 없이도 다 볼 수 있었던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네요. 친구가 다녔던 학교도 가보고, 별로 신기할 거 없었던 전통 시장에 가서 구경도 했네요. 물어보니 카브로프에는 정장이 유명하다는데, 뭐 여기서 살 건 아니니까 바로 패스. 그리고 어떤 큰 공원에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더라고요. 러시아인들은 공원을 좋아해서 정말 왠만한 도시에는 꼭 좋은 공원이 하나씩은 있더라고요. 물론 밖이 추워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도시와 다른 그런 한적한 풍경과 공원은 덮은 눈, 그리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모두 어우러진 정겨운 풍경이 매우 인상 깊었던 공원이었어요.

마을의 전통시장 앞에서. 특별할 건 없었다.

공원 안에는 나스쨔가 좋아한다는 아스넬이라는 식당으로 갔어요. 제가 똑바로 번역한 거라면 무기고라고 번역되는 식당인데 식당이름을 무기고라고 하는 건 조금... 역시 불곰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식당 외관도 크고 멋질 뿐만 아니라 내부도 잘 꾸며놓고 스테이지에 바 등등 여러 가지가 다 갖추어져 있었어요. 다만 사람이 우리 빼고 아무도 없다는게 아주 신기했지만. 메뉴판을 열었는데 음식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푸짐하게 시켜서 맥주 한잔과 곁들여 먹었네요. 저녁을 먹고도 산책을 했는데 이날 산책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정말 피곤했고 눕자마자 바로 잠에 들 수 있었어요.

아스넬이란 식당, 가격에 20정도를 곱하면 원화로 계산할 수 있는데 보시다시피 상당히 저렴하다.

친구가 깨워줘서 일어났는데 친구 아니었으면 아마 하루 종일 잤을지도 몰라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산책에 정말 진심인 것 같네요. 아침에 일어나서 러시아 식으로 바로 차부터 마시고 아침을 먹는 중에 친구의 아버지가 왔어요. 아버지가 예전에 바람을 펴서 집을 나갔고 친구 엄마랑 이혼 한 후 새살림을 차렸다는데 제 친구도 예전에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는데 지금은 잘 지낸다네요. 한국인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러시아의 특별함이랄까. 친구의 아버지는 상당히 덩치가 크고 머리도 좀 벗겨진게 우리가 흔히 알던 러시아인처럼 생겼더라고요. 예전에 운동을 좀 했다나 뭐라나. 다시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 아버지는 뭐 본인 사업 같은 것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친구도 엄청 편하게 말하는 걸 보며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해도 그냥 편하게 말하는 게 많이 신기하긴 했어요.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기차 시간이 되어 다시 모스크바로 향함으로 첫 번째 홀로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두 번째 홀로 여행지는 쿠르가닌스크라는 곳이었어요. 거기도 친구가 살고 있는데 상당히 멀기도 하고 워낙 시골이라 친구도 자주 가진 않는다고 하네요. 기차로는 약 하루정도가 걸리는 여정이라 친구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타고 친구의 고향으로 향했어요. 저희는 제일 싼 기차를 끊어서 가는 길에 기차 안에서 한 러시아 가족(아빠, 엄마, 딸)과 식탁을 같이 사용하게 되었는데 아저씨가 보드카를 매우 좋아하시더군요. 사진을 못찍은게 많이 아쉽지만, 그 아저씨가 점심에 보드카를 권하길래 조금 마셨거든요. 그러더니 저보고 술 잘마신다면서 한 병을 둘이서 비웠고, 다음 정거장에 잠시 기차가 정차했을때 나가서 또 사오시더라고요. 아저씨에게 소련 시대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가서 그런지 기차 여행이 그리 길지는 않게 느껴지더라고요.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친구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저녁을 먹었어요.

친구네 가족, 어린이는 막내가 아니고 이웃집 꼬마인데 같이 사진이 찍고 싶다고 했다.

여담으로 제가 친구에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하니 여기 아주머니가 한국 사람이면 김치를 좋아할 것 같다며 김치를 담궈주시겠다고 했는데, 결사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친구를 통해 전달했어요. 어우 김치 담가주셨으면 다 먹고 가느라 힘들었을 뻔했죠. 그리고 제가 오니 본인들은 고양이와 개를 기르는데 고양이는 집에서 개는 집 밖에서 키운다고 잡아먹지 말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배고플 때 아니면 안잡아 먹으니 항상 음식을 준비해 놓으시면 개가 없어질 일은 없을 거라며 받아쳤죠. 하루는 친구 아버지가 재밋는거 해주겠다면서 부르시더라고요.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네요.

오늘도 평화로운 불곰국의 놀이

위에 보시는 것과 같이 썰매를 차에 매달아서 달렸는데요. 역시나 불곰국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당연히 안전 장비 같은 거야 없고 저는 손님이라 살살해서 웃으며 탄것 같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네요. 그래도 겨울에 이렇게 재밋게 지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았어요. 아이들도 몇 만났는데 다들 해맑고 남의 집 내집 할거 없이 다니는 게 옛날의 한국이 이랬을까 싶기도 하고요. 날씨는 추웠지만 화목하고 정겨운 가정의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제 마음도 많이 따뜻해지는 그런 여행이었네요.


러시아에서 했던 여행 중에 나름 기억에 많이 남는 여행들인 것 같아요. 매번 유명한 관광지에 돌아다니는 것은 어느 TV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고, 책을 통해서도 볼 수 있지만 이렇게 현지인들과 같이 먹고 마시며 지내는 것도 본인만의 훌륭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경험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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