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나누는 사람

모두에게 더 넓고 더 깊은 세상을 향해

미국 생활/후반기 (코로나 후)

한국학교 마무리

Jeongwon Seo 2023. 4. 25. 11:22

제가 토요일마다 3시간씩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3명을 데리고 한국어와 코딩을 가르치던 게 저번 주로 모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주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생각보다 아이들이 똑똑하기도 하고 아는 것도 많아서 준비해 온 것들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때로는 아이들이 너무 산만해서 시간이 모자란 경우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숙제를 내고 확인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평일에는 학교에 가서 다른 숙제를 받아오는 걸 감안해서 첫 번째 학기엔 많이 내지 않았는데요. 한 학기가 끝나고 나니 너무 가르쳐 준 게 부족한 것 같아서 이번 학기에는 숙제를 조금 냈더니 아이들이 잘 못해오더라고요. 더욱 흥미 있고 수준에 좀 더 맞춰진 숙제를 냈어야 했는데 저도 초등학생을 가르쳐 본 것은 처음이라 많이 어설펐던 것 같네요. 
 

 
끝나고 나니 여러모로 더 아쉬운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충분히 재밌게 하면서 많이 배우는 교육을 지향했었는데 두 마리를 잡으려다 다 놓친 것 같은 부분이 전체적으로 아쉬웠고요. 한국어는 특히 아이들에게 논쟁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을 더 가르쳐 줬어야 했는데 아직은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많이 못한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바른말 고운 말 이런 것 보다도 집 안이던 밖이던 누군가에게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건 아주 큰 무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과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편향되지 않게 생각하고 근거 있는 논리를 펼치도록 좀 더 도와줬어야 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딩도 아쉬움을 느낀 포인트는 조금 다르지만 아쉬운 건 매한가지인데요. 아무래도 일주일에 한 시간 수업을 하다 보니 무언가를 소개하는 식으로만 진행이 된 것 같아요. 그래도 교회의 한국학교 프로그램에서 코딩을 배웠다는 건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고, 토요일 코딩 수업에 가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 코딩을 따로 더 배우고 싶다는 학생이(물론 어머님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있어서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르쳐야 할 것이 무언가 한 단어로 떠올려보면 바로 "협업"인 것 같아요. 두 가지로 나누어보면 인공지능과의 협업과 사람 간의 협업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즘 인공지능이 참 핫한 주제잖아요.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엄청 핫했던 ChatGPT와 함께 이런저런 질문도 해보고 게임도 만들고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기계와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요. 앞으로도 사람 마음에 쏙 드는 완벽한 기계가 나올 수 없다는 가정하에 사람이 어느 정도 올바른 질문을 하고 키워드를 입력해 주어야 기계가 제대로 동작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간단한 뱀게임(먹이를 먹으로 몸길이가 점점 길어지고 벽에 닿거나 자신의 꼬리를 먹으로 지는 게임)을 만들더라도 한 번에 냉큼 잘 돌아가는 코드를 뱉지는 않거든요. 에러가 나면 에러 부분도 입력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서 다시 해오라고 해야 하는 등의 노력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하죠. 또한 같은 일을 하려 하더라도 질문을 어떻게 입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했어요. "에이 생각보다 잘 안되네" 이런 느낌보다 "협업"이라는 말 그대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어떤 분야에 가던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협업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두 번째 협업은 바로 사람 간의 협업이에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 같으세요? 지금 같은 트렌드라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보다는 가상세계에 더욱 집착하고 재택근무하는 직장도 많이 늘어나고 사람 간의 접촉이 더욱 줄어들거라 저는 예상하고 있는데요. 그럴 때일수록 사람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독립적으로 격리되어 버린 사람들을 이어주는 그런 인재가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지금까지의 짧은 경험과 식견으로는 책을 읽는 것이 아주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10장에서 20장 내외의 논문 한편을 쓰기 위해 교수랑 그토록 많은 시간을 토론하고 (물론 점차 줄지만) 논리와 논점에 대해서 고민하는데 제대로 된 책(분량이 아니라 내용이)을 한 권 쓰기 위해서는 많은 집중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죠. 좋은 책을 많이 접하고 생각을 여러 갈래로 확장시켜 나가면 나 자신도 몰랐던 사람이 다른 사람조차 더욱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합니다. 물론 책을 많이 읽고도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나쁜 책을 읽은 건지, 책을 똑바로 읽은 건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여튼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작업을 처리해 주더라도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있을 거고 그 사람이 해야 할 일 중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적 네트워크이기에 아이들이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기 전 사고의 폭을 책을 통해 넓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튼 1년이래 봤자 한 학기에 10주씩, 총 20주 간 교사로 일했던 한국학교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쉬웠던 건 다 위에서 털어놓았던 것 같고, 뭔가 후련하면서도 성취감도 느껴지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하자고 꼬셔서 함께 해준 아내도 너무 고생했고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맥주 한 잔 못한 게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마지막 수업 토요일 공식적인 첫 제자가 탄생한 기분이랄까 아주 기분 좋은 하루였던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총총.
 

우리 학생들, JS, SJ, TH이 너무 고생 많았고 너희들 너무 잘했던 것 같아.
 
JS 너는 한국어를 많이 힘들어했는데 열심히 책을 읽고 따라와 준 거 너무 고마웠고, 특히 출처는 모르겠지만 상식도 많고 통찰도 깊어서 선생님이 너무 놀랐어. 항상 인사도 너무 깍듯이 해서 고맙고, 앞으로도 멈추지 말고 계속 너의 가능성을 더욱 넓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요놈의 개구쟁이 SJ, 매번 선생님한테 장난쳐도 방학 때도 선생님이랑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땐 네가 선생님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한다는 게 느껴졌지. 넌 수학도 잘해서 논리적으로 기초가 탄탄하고 퍼즐, 요요 같이 오랜 노력을 요구하는 것도 잘 해내지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느꼈어. 부모님께 이것저것 궁금한 거 많이 물어보고 책도 더 많이 봐야 해!
 
TH아 중간에 네가 한국 가서 너의 빈자리가 아주 컸어. 3명밖에 안되는데 1명이 가다니. 그래도 선생님이 꿋꿋이 마무리를 했으니 곧 여름에 돌아보면 또 만나자. 넌 책을 아주 열심히 읽는 게 인상이 깊었어. 하지만 주제가 너무 한정적이니 좀 더 다양한 책을 봤으면 해. 그리고 컴퓨터 다루는 걸 어려워하는데, 네 나이에선 뭐든지 빨리 배우니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배우면 되니까 흥미만은 잃지 말자!
 

728x90
반응형

'미국 생활 > 후반기 (코로나 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회] ANS 학생학회  (3) 2023.06.02
[경험] 콜로라도 볼더 방문  (0) 2023.05.23
외국에서 김밥 싸기  (0) 2023.04.24
[경험] 미국에서 멘토링  (2) 2023.04.22
미국에서 보험없이 병원가기  (2) 2023.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