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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박사과정에 대한 생각 (feat. Purdue University)

Jeongwon Seo 2023. 8. 22. 04:12

어느덧 박사과정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네요.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군의 지원으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게 박사학위를 했다고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래도 지난 거의 5년간의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포스팅을 남겨볼까 해요. 혹시나 석사나 박사과정을 생각하시는 분들이나 이제 막 시작한 분들께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당신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 돈 (feat. 지도교수)

제일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생각보다 박사학위를 따는 건 어렵지 않다는 거에요. 물론 저의 상황이 다 똑같이 적용될 수 없고 힘들다는 것 또한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그래도 저는 자신 있게 생각보단 쉬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사과정을 취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뛰어난 저술, 위대한 연구업적, 특출 난 아이디어 등 여러 후보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시간과 돈이에요. 

 

 

박사과정을 하시는 분들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그래도 보통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이죠. 결혼 적령기인 시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가정이 있다면 부양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대학원생에게 월급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높지 않기에 혼자 쓰기에도 빡빡하거나 많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상황에 어떻게 결혼도 하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야 국가에서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들이 도와주시죠. 자녀가 30세 전후인데도 자녀에게 박사학위라는 마지막 (아닐지도)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본인들의 돈을 아낌없이 내어주시죠. 이런 면에서 박사과정을 안정적으로 마치는 데에는 시간적 한계와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선행이 되어야 하고 결국 알파와 오메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부의 세습을 위한 도구

앞서 말한 이유로 박사과정은 부자들의 세습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어느 가난한 집의 신분상승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 될 수 있지만요.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우 자녀에게 박사과정을 시켜줄 만큼의 금전적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 집도 마찬가지였지만, 저와 동생이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그래도 대학은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음)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이 부모님들의 염원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는 육군사관학교에 갔기에 집에 많은 보탬이 되었지만 동생이 대학을 다닐 때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엔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 친구분의 도움으로 동생을 졸업을 했고 지금은 애기 하나 낳고 잘 살고 있어요. 저희 집이 뭐 항상 엄청 찢어지게 가난했던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크고 작은 굴곡이 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저희 집처럼 자녀를 대학원에 4-5년 넘게 보낼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부모는 극히 드물 거라고 생각하네요. 

 

 

상황이 이렇기에 박사과정은 부의 세습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박사를 졸업하면 연봉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거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작점이 다르면 끝지점도 다르듯이 박사과정을 밟고 졸업한 사람들은 연봉이 올라가는 속도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빠르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확률도 높거든요. 이런 면에서 본다면 부모의 지원을 받고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몇발자국 먼저 앞서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요. 

 

박사과정 취득율

어쩌면 여러분은 박사과정을 시작한다고 누구나 박사를 딸 수 있나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좁은 식견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여기 퍼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모든 학생이 박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 박사과정 중인 학생들과 심지어 박사를 받은 사람들도 비판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과히 많다고는 할 수 없는데요. 그저 무급 혹은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시키는 일을 그럭저럭 해내왔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도 적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책에 써 있는 기본적인 밑바탕이 튼튼하고 그걸 바탕으로 최신 논문도 읽고 비판적으로 사고로 자신의 연구를 독립적으로 이끌 줄 아는 연구인력을 키워내는 것이 박사과정이라 생각했었지만 본인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박사학위가 그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훌륭한 박사님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냥 박사학위라는 것 자체에는 이 모든 자격이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박사과정 A to Z

이미 어느 정도는 말씀드렸지만 박사학위는 3,4년에서 길게 10년까지 노예로 일한 대가로 주는 보상에 많이 가깝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도교수가 학위취득에 기여하는 비율이 단연 높기에 지도교수의 의도대로 잘 일했느냐가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연구원이 되었느냐 보다 중요한 것이 실상이지요. 게다가 이런 사정 때문에 박사과정 중인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노예 혹은 감정쓰레기 통이 되기 쉽습니다. 지도교수가 다그치면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죠. 같은 과의 다른 교수들도 서로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에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도 종종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요. 

 

 

지도교수와 큰 문제가 없다고 (뭐 있어도 어쩔 수는 없지만) 가정한다면 이곳 퍼듀에서 (다른 학교도 대동소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통과해야 할 기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코스웍(수업)

2. 자격시험

3. 논문 예비심사

4. 최종 논문방어

 

코스웍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과목들을 이수하고 일정 학점 이상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대학원 수업은 그래도 학점에 대한 부담이 많이 적긴 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격시험이야 말로 자신의 역량이 시험되는 마지막 단계인데요. 그렇기에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고 부담을 많이 가집니다. 퍼듀 핵공학과에는 총 네 가지의 자격시험이 있는데요. 두 과목의 필기시험과 핵공학 전반을 물어보는 구두시험,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을 읽고 비판하는 발표 시험이 있어요. 보통은 필기시험에서 낙방을 많이 하지만 구두시험과 발표시험도 종종 떨어지는 학생이 있더라고요. 일 년에 한 번 기회가 있고 규정상 두 번 떨어지면 해당과에서 박사과정을 계속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논문 예비심사는 보통 남은 박사학위 과정 동안 할 연구들에 대한 계획을 발표해요. 물론 지금까지의 연구과정도 발표하지만 그것보다 교수들 앞에서 이런이런 주제로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를 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주목적이죠. 최종 논문방어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그동안 연구해 온 것들을 총망라해서 발표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마치며

별로 나무랄 거 없을 시스템 같지만 자격시험만 통과한다면 그 이후의 과정들은 지도교수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함정 아닌 함정이겠네요. 계속 반복이 되는 것 같지만 지도교수의 승인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도 그래도 적지 않는 사람들이 박사과정 중에 정말로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연구원이 되어 갑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있다면 박사과정도 감내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소회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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